오전 일을 마치면 퇴근할 수 있었던 지난 일요일이었지요.
새벽6시에 출근을 했으니 오후2시가 되면 퇴근한다는 걸 알고 있는 딸아이가 내심 아빠가 오기를 기다렸나봅니다.
다른 집도 그런가요?
저희 집은 제가 없으면 어딜 나가려고 하질 않는답니다.
간만에 일요일 오후에 집에서 좀 쉬려고 했는데,
딸아이에게서 언제 오냐고 전화가 오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회사에 일이 있다고 둘러댔지요.
한 30분이 흘렀을까.
퇴근시간을 학수고대했던 딸아이의 얼굴이 눈에 밟히더군요. 천상 아빠인가 봅니다.
지금이라도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싶어 서둘러 집으로 차를 몰았답니다.
"얼른 챙겨라~~나가자!"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시간 있으면 책이라도 보라며 눈에 불을 켠 채 지키고 있는 엄마,
차라리 아빠 따라 밖으로 나들이 가는 게 훨씬 나아보였을 겁니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엄마아빠 따라 나서기를 꺼려한다는 걸 알기에 이번 경우는 일탈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마냥 모른 채 할 수는 없어 조금은 피곤하지만 서둘러 집으로 달려온 것이었지요.
서론이 좀 길었네요.
아이들과 약 한 시간가량 놀고 난 뒤 5시경에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하나씩 사먹는 바람에 저녁밥이 어중간해져버렸습니다.
햄버거 하나로 저녁밥을 때우기엔 좀 섭섭하고, 그렇다고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시간 맞춰 다시 저녁밥을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이야 집 밥 먹는 것을 워낙 싫어하기에 반색을 하지만 아내는 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모처럼 휴일인데 밥 차려 먹자해서 좋아할 주부 없지요. 그래서 집 근처에서 어묵이나 좀 사먹고 끝내자고 했더니 모두가 좋아합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단지 내에 있는 포장마차분식점으로 향했지요.
이미 겨울철로 들어선 저녁 날씨라 매우 사납더군요.
비닐로 둘러싸여진 포장마차에선 옅은 불빛과 함께 식감을 자극하는 어묵냄새가 끊임없이 새어나오고 있었지요.
아이들을 데리고 포장마차로 들어가 어묵과 함께 따뜻한 국물로 속을 녹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딸아이가 힐긋 밖을 쳐다보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면 몰랐을 것입니다.
포장마차 밖에서 안쪽을 응시하며 서 있는 여자아이 하나,
웬 아이인가 하고 처음에는 고개를 돌려버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묵이 목으로 넘어갈 리가 없었지요.
대충 나이로 보아서는 이제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어묵을 먹고 있는 광경을 빤히 쳐다보는 걸로 봐서는
먹고 싶은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딸 같은 아이가 추운 날 밖에서 군침을 삼키고 있는데 모른 채 할 수는 없었지요.
사연은 들어봐야 알 수가 있는 겁니다.
"먹고 싶으면 들어와서 사먹고 가거라."
잠시 머뭇거리더니...
"먹고는 싶은데 돈을 안가지고 나왔어요."
"그래? 그럼 아저씨가 사줄 테니 하나 먹고 가라."
"정말 그래도 돼요?"
순간 희색이 만연하여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와서는 어묵하나를 집어 드는 아이,
날씨도 쌀쌀하고 거기에다 도래의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니 발은 떨어지지 않고 정말 먹고 싶었나 봅니다.
어묵 하나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고는 하나 더 먹으라고 했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는듯하더니 한 개를 더 집어 들며, 나중에 꼭 갚겠다는 겁니다.
어묵 두 개 해봐야 천원이면 되는데,
많고 적음을 떠나 아이의 입담이 너무 기특하여 지긋이 웃어주고는 말았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으면 그걸로 된 것이었죠.
그렇게 어묵 두 개를 맛있게 먹은 여자아이가 먼저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족은 집을 향해 걸어 들어왔습니다.
일요일 저녁밥은 이렇게 해결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뜬금없이 초인종이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인터폰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보니 어린아이인 것만은 분명하였습니다.
이 시간에 누구일까 하며 현관문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줬던 바로 그 아이였던 것입니다.
"어??너 여기 왜 왔어?"
"아저씨...아까 어묵 값이요. 안녕하계세요."
반으로 접어진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고는 서둘러 승강이에 타려는 아이를 다시 불러 세웠습니다.
"얘야, 너 우리 집 어떻게 알았어?"
"아, 여기로 들어오는 걸 밑에서 다 봤어요."
"아 그랬구나...안줘도 되는 돈인데, 암튼 고맙다."
엉겁결에 받을 수밖에 없었던 천 원짜리 한 장,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니, 아마도 우리가족이 집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몰래 따라와 몇 호인지 알아내고는 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들고 온 것으로 보입니다.
딴에는 어묵을 얻어먹고는 그냥 갈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 어느 집의 아이일까.
창가너머로 보니 별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
승강기를 내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아이의 발걸음이 왜 그렇게 가벼워 보이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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