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찾아간 게장 백반 맛집에 세 번 놀란 이유
남해여행을 마치고 여수로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도로에서 지체한 시간이 많아 여수에 도착하자마자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할 정도로 시간이 깊어져 버렸습니다.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어디를 가면 무엇을 먹어봐야겠다고 미리 정해 놓았지만 여수에서는 따로 정해둔 곳이 없었답니다. 여수로 향하는 차속에서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찾아낸 음식점, '단돈 7천원에 게장백반을 맛볼 수 있는 황소식당'이란 곳입니다. 대충 살펴본 바로는 평도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아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는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여수에 들어서고도 한참을 달려야 했던 그곳, 식당 근처에 다다랐을 때 이미 8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입니다. 잔뜩 허기질 만도 했지요.
네비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큰길에서 골목길로 우회전하는 순간, 가장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황소식당이란 간판보다는 식당입구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길가에까지 길게 줄을 서 기다리는 손님들이었지요. 저녁때를 한참 넘어 8시를 가리키고 있는데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음식점, 과연 제대로 찾아온 것일까요.
<시장바닥에 온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가득 찬 식당 안>
아내에게 차에서 먼저 내려 줄을 서게 하고는 가까스로 주차를 마치고는 식당 안으로 돌아와 보니 길게 늘어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간 상태, 알고 보니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우리가족이 마지막 손님입니다. 이후부터 오는 손님들은 모두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아직 8시 밖에 안 된 시간인데, 찾아오는 손님들을 돌려보내는 까닭이 궁금하여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여쭈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주 간결하더군요. 밥이 떨어졌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아 다시 물었습니다.
"아하, 여기도 재료가 떨어지면 그날 영업은 끝이로군요."
"아니, 재료가 아니라, 밥이 떨어졌어요. 밥하는 시간이 길어 손님 못받습니다."
이건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랍니까. 재료가 떨어진 게 아니고, 밥이 없어 장사를 못하다니요.
하지만 잠시 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니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이집의 주요 메뉴는 바로 게장백반정식,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두 가지를 여러 가지의 밑반찬과 함께 단돈 7천원(일인분)에 제공되는데, 감칠맛 나는 게장은 모두가 무한리필이라는 것입니다. 무한리필 재료가 떨어지면 안 되겠지요. 이에 비해 공기밥은 따로 천원의 추가요금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
서비스는 엉망인데,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들
-두 번째 이유-
소문난 밥도둑 게장 두 종류가 무한리필, 하지만 공기밥은 추가요금 받는 독특함
-세 번째 이유-
태어난 처음으로 커다란 공기밥을 두 그릇이나 비워
이집에 들어와서 놀란 세 가지 중, 첫 번째 이유는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8시쯤부터 손님을 거부하기 시작했지만, 이후에도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어왔던 것이지요. 문제는 들어오는 손님마다 냉혹하게 문전박대(?)를 당한다는 사실이었지요. 서울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손님도 별무소용, 심지어 영업이 종료된 줄 모르고 들어와 자리에 차지하고 앉아있는 사람들도 가차 없이 내쫓습니다.
도저히 손님을 받을 상황이 안 된다면 아주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자세이지요. 하지만 얼굴색 한번 변하지 않고 야박하게 손님을 대하는 모습은 과연 이곳이 줄서서 먹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집인가 싶더라구요. 수십 차례에 걸쳐 쫓겨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옆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무안할 정도입니다.
서비스는 별루인데,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런 형태의 음식점은 아주 멀리서 한번 맛을 보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입니다. 전국맛집의 인터넷검색, 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주요 고객인 반면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거의 찾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푸짐하게 차려진 게장백반정식>
저렴한 가격에 게장 무한리필이 사람들 찾는 이유
서비스는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이유는 아마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맛에 대한 좋은 평가가 아닌가합니다. 맛 하나는 정말로 일품이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여수맛집 중에서 이 근처에는 이곳 말고도 맛있는 게장백반집이 여러 곳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집이 비슷한 가격에 게장은 무한으로 제공된다는 것입니다.
<게장백반정식에 딸려 나오는 조기 매운탕>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진 간장게장, 몇인분의 개념은 없습니다. 무한리필입니다.>
<빨간색의 양념이 군침을 돌게 하는 양념게장>
해안에 인접한 도시답게 해산물을 이용한 밑반찬들과 여수의 자랑인 돌산 갓김치가 곁들여진 근사한 한상차림은 먹어보기 전에서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합니다. 어린이들이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매콤한 양념게장, 그리고 시커먼 간장에 짤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오히려 단맛이 느껴지는 간장게장의 감칠맛이 사람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합니다.
<밥을 비벼 먹기에는 조금 작았던 게딱지>
이곳에서 제공되는 밥공기의 크기도 남다르더군요. 얼핏 보면 커다란 국그릇처럼 보이는데, 혼을 빼놓고 먹다보면 밥이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공기밥 한 그릇이 뚝딱 사라져 버리더군요.
수도 없이 다녀본 음식점에서 밥한공기가 모자라 추가로 한 공기를 더 먹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두공기째도 완전히 비워버린 것을 보고는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더 놀라는 눈치입니다. 진정한 밥도둑을 여수에서 만난 셈입니다.
<커다란 밥 한공기를 비우고도 모자라 한 공기를 더 주문하였습니다. 밥이 떨어져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두번째 공기마저 싹 비운 모습, 정말 밥도둑 실감...>
<우리가족이 먹어 치운 잔해들>
올여름 가족여행에서 유난히 기억이 남았던 게장백반정식의 명가로 불리는 황소식당, 무한리필에다가 두공기의 밥도 뚝딱 해치우는 진정한 남도 별미를 맛보고 왔지만 손님을 야박하게 좇아내는 불친절한 광경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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