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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채소장수 할머니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by 광제 201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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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km의 걷기여행을 마친 다음 지친 몸을 이끌고 10여분에 한 번씩 지나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시외버스에서 목을 좀 축인 후 머리를 뒤로 기댄 채 잠깐 졸았을 시간이었습니다.

운전기사 아저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버스 안에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 앉은 할머니 차비 안 낼 거 에요? 얼른 차비 내세요.'

좌석에 앉아 있는 한 할머니에게 하는 소리였습니다.

언제 버스에 올랐는지 잠깐 졸고 있는 사이에 한 마을에서 할머니 세분이 보따리를 하나씩 등에 짊어진 상태였고, 좌석에 앉으면서 짐을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시골에 갈 때면 늘 보던 모습이라 채소를 장에 내다팔고 돌아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이구나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까 오를 때 차비 냈는데, 뭔 소리여~ 그거하나 기억 못할까봐? 아까 차비 냈어~!'

정황을 보니, 기사 아저씨는 할머니를 가리키며 차비를 내라고 하는 상황이었고,

할머니는 차에 오를 때 이미 차비를 냈다고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세등등하게 차비 내라고 소리치던 기사 아저씨.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가 차비를 냈다고 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였습니다.

'아~오를 때 차비 내셨어요? 네! 알았어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대답을 하던 기사 아저씨.
사실이 어떻든 간에 버스 안에 다른 승객들도 보고 있고 하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기 싫었던지 할머니가 차비를 낸 것으로 인정을 하는 분위기입니다. 버스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고 그 후 2~3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쿠~내 정신 봐라!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나..'

할머니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면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사아저씨에게로 가고 있습니다. 기사 아저씨에게 할머니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이구 늙으면 죽어야지... 탈 때 차비를 낸 줄 알았는데, 호주머니에 보니 돈이 그대로 있네 그려~ 정말로 미안해 기사양반~'

순간, 차비를 지불하고 좌석으로 돌아와 앉는 할머니를 보고 있는데, 왜 당사자도 아닌 저의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착각으로 낸 줄만 알고 있었던 차비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미 상황이 종료된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이미 버스 안에 있는 승객들이나 기사아저씨 그리고 다른 할머니 까지도 모두가 차비는 지불된 것으로 알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을 속이지 못하고 실수를 인정하며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꼬깃꼬깃 접어뒀던 차비를 지불하였습니다.

할머니에게는 보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시장에서 팔다 남은 채소로 보여 집니다. 대부분의 시골의 할머니들은 집 뜰에 가꾸었던 채소를 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용돈을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물론 많지 않은 돈 이겠지요. 많아 봐야 1~2만원 벌자고 채소를 장만하고 장에다 내다팔려고 버스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할머니는 차비조차도 벌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데도 자신을 속이지는 못했습니다. 비록 불편한 몸의 자신일지라도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기사 양반이 자식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리에 돌아와 앉은 할머니. 무슨 큰 죄 값을 치른 사람처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습니다. 기사아저씨는 룸미러를 통해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또 보기를 수차례, 이미 아저씨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합니다. 점점 각박해져가고 모두가 힘들어하는 세상이지만 이런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추천도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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