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된 졸업식 보고 떠오른 30년 전 졸업식
여중생 졸업식 뒤풀이의 여파가 가히 폭풍과도 같습니다. 졸업생에게 졸업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밀가루를 뿌리거나 계란을 던지기도 하며 심지어는 토마토케첩까지 뿌려 됩니다. 이른바 '졸업빵' 이라합니다. 오래전에도 간혹 장난 끼 섞인 졸업 축하 행사(?)가 있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해 전부터 이 졸업식 풍경이 볼썽사납게 변질되고 있습니다. 요즘 주요 포털에 떠돌아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동영상은 단순한 졸업식 뒤풀이의 정도를 넘어 집단 괴롭힘의 현장이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 여학생을 가운데 두고 많은 학생들이 둘러싼 채 교복의 상의를 강제로 벗기고 머리에는 시뻘건 케첩을 뿌리기도 합니다. 결국 괴롭힘을 참다못한 여학생은 끝내 도망치고 맙니다.
단순한 졸업식뒤풀이의 현장이라고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모습입니다. 딸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예전에는 없었던 낯 뜨거운 요즘세태를 보니 무엇보다도 걱정이 앞섭니다. 졸업식 뒤풀이를 가장한 집단 폭행. 어떻게든 강력하게 제재를 가하여 두 번 다시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씁쓸한 세태를 보니 문득 30여 년 전 중학교를 졸업할 당시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당시에는 요즘의 졸업빵과 같은 축하 행사(?)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때라 졸업식이 끝나면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식당에 가서 식사를 마치고 나들이를 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낭만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어렵게 살아가던 시절이라 이런 정겨운 모습은 극히 일부의 가정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친구들끼리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
때는 2월초.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지역은 겨울채소인 '당근'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지역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전국 생산량(7만 톤)중에 5~6만 톤이 무료 슬롯 사이트에서 생산되는데, 이중에서도 제가 중학교를 다녔던 지역에서 무려 5만 톤이 생산되니 전국 최고의 당근주산지입니다. 문제는 졸업 시즌과 당근 수확기가 겹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워낙에 일손이 모자랐던 시기라 자식의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밭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더군다나 혼자서 쓸쓸하게 졸업식을 마치고 나서도 졸업장만을 받아든 채 부족한 일손을 도우러 밭으로 달려가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졸업식을 마치고 친구들 틈에서 슬쩍 빠져나오다가 녀석들의 눈에 딱 걸린 겁니다.
"얌마~! 혼자 어딜 가?"
"어? 어~ 밭에 좀 가야돼~"
"야~이런 날은 밭에 안가면 안 되냐?"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 다섯 명이 있었는데, 3년 동안을 추억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 했던 녀석들이었는데, 혼자 빠져 나가는 것을 보고는 김이 새버린 것입니다. 미안하다고 애써 이해를 시키고는 부지런히 밭으로 달려갔는데, 사건은 이후에 벌어진 겁니다.
막 일을 시작하려고 할 찰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 할 친구들이 밭으로 몰려온 것입니다. 엄동설한이라 점퍼 속에 그대로 교복을 입고 손에는 졸업장을 든 채 친구의 뒤를 따라 곧장 밭으로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한 녀석도 빠지지 않고 말입니다.
"어머니 우리도 같이 도울게요."
교복 차림에 아들을 따라 일을 돕겠다는 녀석들을 보고는 기겁을 하신 어머니는 절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이미 녀석들은 결심을 한 듯 달려든 뒤였습니다. 허기진 배는 당근으로 채우며 친구들끼리 웃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일에 매달렸던 오후 한나절. 일을 마친 친구들에게 어머니는 용돈이라도 챙겨주실 모양입니다.
당시 성인 남자의 하루 일당이 7천원 하던 때라 몇 푼이라고 챙겨주시려고 몸빼 춤을 뒤척이는데, 녀석들이 이 돈을 받을 리가 없었습니다. 한사코 주시려는 어머니의 용돈을 거절하다 못한 나머지 결국에 녀석들은 목욕비만을 받아들고는 그길로 녀석들과 곧장 달려간 곳은 동네 목욕탕이었습니다. 콧구멍이며, 눈가며, 흙먼지로 가득한 친구들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탕에 몸을 담그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댔던 30년 전 중학교 졸업식 날의 추억이었습니다.
전원생활 2010.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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