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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여성 운전자는 왜 항상 도로에서 약자여야 할까

by 광제 201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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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모 겪는 여성운전자 보니, 아내 떠올라

운전을 하다보면 황당한 경우를 정말 많이 보게 되지요.

여성운전자들이 많아지고 더불어 초보운전자들도 부쩍 늘어난 탓에 갖가지 에피소드가 도로위에서 벌어진답니다. 인터넷에는 이미 김여사시리즈가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지요.

하지만 도로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이용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운전을 능숙하게 한다고 특권 의식을 가져서도 안 되겠고, 운전이 미숙한 초보라고 해서 도로에서 항상 약자가 되라는 법은 없는 겁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수개월 전의 일입니다.

앞서가던 흰색차량이 갑자기 중앙선 쪽으로 핸들을 틀며 급정거를 합니다. 마주오던 차량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정면충돌 사고가 일어날 뻔한 상황이었지요. 교차로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차량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도로는 순간적으로 마비.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집니다.
오른쪽에서 나온 차량의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흰색차량으로 다가가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퍼붓기 시작하는 겁니다. 뒤이어 흰색차량에서도 운전자가 내립니다. 죄송하다며 연거푸 허리를 조아리는 운전자는 중년의 여자입니다. 초보운전 딱지가 붙어 있는 걸로 봐서 운전경력이 얼마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흰색차량의 뒤를 따르고 있었기에 눈앞에서 벌어진 일. 도로의 구조나 상황으로 봐서는 교차로로 진입하면서 주의를 게을리 한 건 분명 남자운전자인데, 순식간에 여자운전자가 죄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성운전자에다가 초보딱지까지 붙어있는 걸 보고는 괜히 기선을 제압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래서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고 했던가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한참 아래로 보이는 남자에게 허리를 조아리는 여성운전자.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도로를 마비 시켜놓고는 한참동안 여성을 윽박지르는 남자 운전자. 이건 아니다 싶어 차에서 내렸지요.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무엇보다 약자라는 이유로 손해를 본다는 느낌, 그리고 우리 아내도 차를 몰다가 이런 경우를 당하겠구나 생각하니 더욱더 그냥 지나치질 못하겠더군요.

"이보세요...제가보기엔 아저씨가 잘못 한 건데, 여자분께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당하고만 있는 여자에게도 한마디 했습니다.

"아주머니...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니 당하지만 마시고 차라리 경찰을 부르세요..내가 증인서 드릴게요..."

도로는 꽉 막혀 여기저기서 크락숀을 울려댑니다. 희한한 놈이 별 참견 다한다고 생각했는지 위아래를 흘겨보고는 이내 차를 몰고 사라지는 남자운전자. 그때서야 안심이 된 듯, 고맙다며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차에 오르는 아주머니, 어쨌거나 이렇게 교통정리는 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일이 불현듯 걸려온 전화 한통화로 다시 생각나게 된 것입니다.
 
보이스피싱 같았던 전화 한통

며칠 전, 뜬금없이 걸려온 한통의 전화
아리따운 아가씨의 목소리라 처음에는 반색을 했지만, 곧이어 OO청이라는 소리에 지은 죄도 없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기관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보자 했지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이번에 들려오는 건 남자의 목소리.

"OOO선생님 되시지요?"

"네..그런데요..."

"몇 개월 전에 중앙로터리 근처에서 여자운전자를 도와드린 적 있지요?"

처음에는 뭔 소린가 했지요.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수개월 전 도로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나는 겁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자의 남편 되는 사람으로서 감사의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도 업무가 바빠 잊고 있다가 아내의 성화에 이제야 연락을 한다는 겁니다. 아내에게 차량번호만 넘겨받고는 어떻게 감사의 말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부득이 차적 조회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밥 한 끼 산다는 거 겨우 말렸습니다.

무엇보다도, 돌이켜 보면서 놀랬던 것은 당시 여성운전자의 태도입니다. 우리 사회 고위층들에게 너무 만연해 있지요. 보통 여자라면 남편의 지위를 이용하여 신분을 내세울 만도 하였지만,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건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왠지 기분 좋은 사건이었지요. 도로에서 있었던 조그마한 도움이 여자분 입장에서는 깊은 인상을 받았나 봅니다. 이처럼 초보운전 시절에는 누구나 다 힘든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경황이 없게 마련이지요. 도로위에서의 배려는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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