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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한라산 산행에서 있었던 황당한 사연

by 광제 201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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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려달라는 등산객, 없다고 했더니

지지난 주말이었지요.
비를 쫄딱 맞고 한라산 정상을 다녀온 적이 있었답니다.
강추위에 무릎아래 다리부분이 완전히 젖는 바람에 생고생을 한 것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마침 혼자 산행을 간 남편이 걱정되어 아내로부터 하산 중에 전화가 걸려 왔었는데요,
강추위보다도 아내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들었던 황당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경직됐던 다리가 하산할 때는 피로와 함께 체중이 무릎에 실려
자칫하면 움직일 수 없는 골절상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긴장된 상태에서 엉겁결에 벌어진 일이라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전화를 걸어왔던 아내,
조금 전 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듣고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는데요,
당시 황당했던 사연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연은 한라산 정상을 오른 후, 관음사 코스를 따라 하산하기 시작한 지 약 30분 정도 흘렀을까. 왕관봉을 타고 내려올 때 벌어졌습니다.
궂은 날씨라 평소보다는 등산로가 많이 한적했었는데, 마침 한라산 정상 쪽을 향해 걸어오는 한 등산객을 마주하였습니다.
'지금 올라가면 참 고생이 되겠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목례를 하는 순간, 이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기요."

오르던 길을 멈춰 돌아서 쳐다보는 등산객,
산행 중에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경우라면 의례히 정상까지 남은 거리를 물어보는 경우인데,
이날도 당연히 이와 비슷한 말을 걸어올 줄 알고는 반갑게 대답을 하며 뒤를 돌아봤지요.

"죄송하지만 돈 가진 것 있으면 만원만 빌려줄 수 있어요?"

난데없이 돈을 달라는 50대 초반의 낮선 사람,
말로는 빌려달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그냥 적선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유명 아웃도어 의류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것으로 봐서는 돈 만원 갖고 구걸할 사람으로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산 중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돈을 달라는 것을 보면 무언가 딱한 사정이 있을지 몰라 물어보았지요.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른 게 아니고 서울을 가야하는데 비행기 삯이 모자라서 그럽니다."

이 말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더군요.
어떠한 사정으로 교통비까지 구걸하는 상황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돈도 없는 사람이 비행기는 웬 말이고 그 와중에 산행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사람에게 주머니를 털어 적선할 하등의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거절을 했지요.

"산에 올 때는 돈을 갖고 오지 않아서요. 가진 게 없네요."

그런데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아저씨,
사정을 하던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갑자기 포악한 얼굴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돈 없다고 하면 되지, 이유는 왜 물어보는데?"

순간 긴장감이 온몸으로 엄습하더군요.
건장한 체격은 둘 째 치고 상대를 노려보는 눈빛은 쳐다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무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달려들기라도 하면 나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손에 들고 있었던 등산스틱 두 자루,
여차하면 이걸로 라도 방어를 할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잠시 째려보던 이 등산객, 곧바로 발길을 돌려 산을 오르더군요.
순간적으로 긴장을 해서 그런지 등에서 식은땀이 다 흐르더군요.

이후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식을 취하고 있을 때 아내가 상황을 전해 들었으니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 교통비가 모자라서 도움을 청한 건지 아니면 강탈을 하려는 의도인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수도 없이 산행을 하면서도 이렇게 황당한 일을 겪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요즘 들어 여성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인데,
이런 황당한 일이 여성에게 닥쳤다고 가정을 해보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추천은 또 하나의 배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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