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대형사고 친 초등생 아들, 어떡해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채 정오가 되기 전 인데도 불구하고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아내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이 오후에 걸려오기 때문에 이른 시간인 오전에 벨이 울려 댄다면 필시 급한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상은 적중하여 아내의 목소리가 많이 격앙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아들한테 휴대폰으로 게임하라고 그랬어요?"
"아침부터 전화해서 뭔 소리야? 자세히 말해봐~!"
아들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초등학교 다니고 있는 4학년 아들 녀석이 엄마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였는데, 정보이용료를 초과하면서 까지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틀에 걸쳐 자그마치 16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사용료가 통보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했던 휴대폰 게임을 제가 허락했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아들 녀석이 저에게 휴대폰에 대해 여쭤본 것이 있습니다.
"아빠! 인터넷에 연결 안하면 돈 안내는 게임이지?"
"그럼~! 당연하지. 인터넷에 연결이 되어야 돈 내는 거지."
"그럼 아빠 나 이 게임 조금해도 되겠네?"
"연결하지 않는 게임이면 해라. 하지만 오래는 하지 말고."
이게 아들과 나눴던 내용입니다. 아들은 돈을 안내는 게임인줄 알고 안심하고 즐겼는데, 그게 10월31일, 그리고 11월1일에 걸쳐 무려 16만원이란 거금의 정보이용료가 청구된 것입니다.
퇴근하여 고객센터에서 날라 온 문자의 내용을 보니 정말 가관입니다. 얼마나 게임을 했기에 이 정도의 금액이 청구됐는지는 모르지만, 죄다 초과됐다는 내용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초과됐다는 문자를 왜 3일이 지난 이제야 보내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처음 사용한 날에 이런 문자를 보냈더라면 분명 무슨 조치를 취했을 텐데, 이미 금액이 불어 날대로 불어난 지금에야 문자가 날라 온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 급급한 휴대폰 회사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생의 한순간 판단미스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니 16만원이란 댓가는 너무 가혹하더군요. 한마디로 할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
공교롭게도 부부싸움 일보직전까지 몰고 간 휴대폰 사건이 일어난 11월2일인 어제는 바로 당사자인 아들의 생일날입니다. 아들보다 먼저 출근한 바람에 생일 축하 인사도 못한 저는 등교를 준비하는 아들 녀석에게 전화로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저녁에 맛있는 것 사줄 테니 학교 잘 갔다 오라고 했었는데, 불과 몇 시간 후 문제의 문자가 날라 온 것이었습니다.
아내와의 통화에서 좋은 소리가 오갔을 리는 없고,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단단히 화가 난 아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들 녀석을 얼마나 다그칠지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일단 오늘은 생일이니 절대로 내색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아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올해 생일은 미역국도 끓여주질 않겠다고 합니다. 흥분한 아내를 충분히 가라앉히고는 단단히 당부를 하였습니다. 생일이 지나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일단 기분 좋게 생일상 차려놓고 먹고 싶은 것 사주라고 말입니다.
퇴근시간에 케익을 하나 사들고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아내는 아직도 분이 삭혀지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아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녀석이 먹고 싶다는 피자랑 치킨을 주문해 놓고 간단하게 차려진 생일상, 지금까지의 생일상 중 가장 초라한 생일상을 준비해준 것 같아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이 과연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이용료가 없는 게임인줄 알고 사용한 아들이나, 휴대폰을 아들의 손에 맡겨 둔 아내 또한 크게 잘못한 점은 없어 보입니다. 차라리 제가 게임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할 걸, 괜히 하라고 했나 봅니다. 갑자기 머리가 찌근찌근 아파옵니다. 어떻게, 그냥 넘어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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