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때문에 벌어진 황당사연, 아빠! 방위병이 뭐야?
이런 걸 두고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책 한권이 저를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하필이면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있는 시간에 책이 배달 된 것이 문제였지요.
택배직원에게 책을 받아들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봉투를 개봉하자, 방에서 공부를 하던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쪼르르 달려 나옵니다. 이 녀석 호기심이 장난 아니거든요.
"아빠 무슨 책인데? 어~! 만화책이네?"
"어디봐봐...아빠!" "엥? 만화책이 아니었네..."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녀석이라 정체모를 책이 배달 된 것을 보고는 궁금하여 뺏어 들었는데, 표지가 상당히 눈길을 끌었나 봅니다.
"악랄가츠의 군대이야기??"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녀석.
"아빠! 군대이야기는 알겠는데, 악랄가츠는 뭐야?"
"뭐긴 뭐야...가츠가 지은 건데, 성격이 악랄해서 악랄가츠지.."
"아~! 그렇구나..성격이 못됐나 보네..."
"근데..아빠~! 군대이야기면, 총싸움 하는 것도 나와?"
"그럼..당연하지, 아주 재밌다..."
"그럼 이 책 내가 읽어도 돼지?"
"웅..그래라."
여기까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잠시 후 책을 읽기 시작한 아들 녀석은 호기심 천국입니다. 처음부터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표지에 그려진 계급장을 보고는....
"아빠~! 이 계급은 뭐야?"
"웅~병장이지..작대기 네 개면 병장이야.."
"그러면 아빠는 뭐야?"
"어? 어...아빠도 당연히 병장이지...;;"
아빠와 아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내는 옆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저에게 보내지만 저는 그 미소에 대해 왈가왈부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군대 얘기가 나오면 긴장감이 흐르는데, 오늘은 아들 녀석의 질문이 은근히 나를 긴장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호기심은 끝날 줄 모르고 책속에 들어있는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질 때마다 질문도 빠짐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 남자이며 명실 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한 아빠인데 군대 질문에 모른 채 할 수는 없었지요. 그런데 이런 자신감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 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혼자 읽어 내려가던 녀석은.....드디어.....
"아빠! 5.56mm 보통탄과 세열수류탄이 뭐야?"
"...........;;"
"아빠....이게 뭐냐구....."
"어...그게....그건 말야....;;"
순간 위기 탈출을 위하여 재빠르게 머리를 굴릴 찰나, 아내가 끼어 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들아~! 아빠...방위야..."
"방위??? 그게 뭔데?"
웃음을 참으며 아들과 아빠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내가 결국은 발설하지 말아야 할 비밀을 아들에게 털어 놓은 것입니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방위’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으면 안 될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방위는 후방으로 침투하는 적에 맞서........"
"북한군은 용맹한 방위군이 무서워........"
"대한민국에 방위병이 없었더라면........" 등 용감무쌍한 복무(?)경력들을 열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물론 아내는 배꼽이 뒤집어졌습니다.
아들은 아빠의 무용담이 흥미로운지 책을 읽다 말고 귀를 기울이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은 아들만 모르고 다 아는 사실,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아마도 수도 없이 질문이 쏟아질 것이 뻔한데, 이거... 군대얘기가 사람 잡네요. 근데...김일성이가 후방으로 쳐들어오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방위병 때문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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