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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15년 동안 남편의 호칭을 잃고 살아온 사연

by 광제 2010.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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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12년 넘도록 제대로 된 호칭 들어본 적 없어

"오빠라고 불러봐~ 싫어? 싫으면 자기야~ 불러봐.."

무슨 소리냐구요? 아내와 결혼하기 전 데이트 할 때 나누던 대화입니다. 연애 3년하고 결혼했죠. 결혼 12년이 넘었으니 합하면 15년, 그 세월 동안 남편이란 호칭을 듣지 못하고 살아 왔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연애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개로 만난 경우라면야 첫 만남에서는 다들 쑥스럽고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머뭇거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헌데 아내와 저는 너무 자연스럽게 만난 게 흠이었나 봅니다. 첫 대면부터는 '아저씨'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아저씨란 호칭이야 머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에서는 별 문제가 되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둘이서 눈빛으로 전기가 '찌리릭' 하고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아저씨'란 괜히 거북스럽게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도 다른 연인들처럼 '자기야~'소리도 듣고 싶었고, '오빠야~' 소리도 듣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그게 맘대로 안 되는 겁니다.

시간 날 때마다 제대로 된 호칭을 잡아보려고 무던히 노력을 했습니다. 해도 해도 안 되기에 앞으론 아저씨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 것을 공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오빠라든가..자기라든가...부르려면 어떠한 호칭이 튀어 나올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가관입니다.

“저기~~ 있잖아~!”

물건 가리키는 소리가 아닙니다..ㅜ.ㅜ 저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저 만치 멀리 있다가도 "저기~"하고 부릅니다. 어찌하나 보려고 시치미 뚝 떼고 대답을 안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쪼르르 달려 와서는 면전에다 대고 "저기~뭐 좀 사다줘!" 이건 뭐?

연애 할 때라든가 결혼초기에 생각하기에 나중에 가면 제대로 된 호칭이 붙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푼 꿈은 첫애를 보고 애 이름을 지으면서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내가 저를 부르는 호칭은 이제 아들의 이름을 딴 '혁진아빠'로 정해져버렸습니다.

가끔은 제가 "여보야~ 여보야 라고 불러봐!" 하면 빙그레 웃고 맙니다. 머 한번 불러 주는 게 그리 대수라고 그 한마디가 입 밖으로 안 나올까요. 연애시절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호칭을 제대로 부르게 해둘걸 이제 와서 후회해도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냥 포기하고 살고 있는데도 아주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만약에 애들이 없었다면 지금도 '저기~'로 부르고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길을 가다가 다른 부부가 서로 여보~ 자기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귓전에 스칠 때면 은근히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호칭이 부부간 애정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애정이 넘쳐 보이고 간드러지는 호칭을 사용하는 주변의 많은 부부들이 부러웠던 시기도 이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창 뒷바라지에 열을 올려야 할 초등생 두 명의 엄마로서의 짊도 만만치 않은데 언제까지 호칭 타령만 할 수도 없는 것이겠지요. 장년을 지나 노년에 이르러 애들 출가 다 시키고 나면 '영감'이라고 한번 불러 줄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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