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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내 아들이 남에게 욕먹는 모습을 보니

by 광제 2010.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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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남에게 욕먹는 모습을 보니

-못된 노인의 행동에서 얻어 낸 값진 교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알지도 못하는 노인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습니다. 반사적으로 달려가 노인 앞을 가로막아 섰지만, 정작 노인 앞에서는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아니, 반대로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제 아들이 잘못했노라고 말입니다.

며칠 전 아들 녀석과 같이 시내의 마트에 쇼핑을 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빠가 물건을 고르는 시간이 지루했는지, 아들 녀석은 한시도 가만있질 않습니다. 멀리 가지 말고 놀고 있다가 잠시 후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는 하던 쇼핑을 마저 끝내고 잠시 후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는 눈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략 70대는 되어 보이는 노인이 한 어린이를 앞에 세워놓고 심하게 꾸중을 하고 있었는데, 꾸중을 듣고 있는 어린이는 제 아들이 분명해 보입니다.

마침, 마트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다가 계산원과 실랑이가 벌어져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 있던 상황이라 욱하는 마음에 달려갔습니다. 남의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따질 참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기분이 안 좋은데, 이 노인네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라고 생각하며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노인과 아들 사이를 가로막고 따졌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시죠?"

아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꾸중을 하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끼어든 나를 보고는
 
"이 아이...아버지인감?"

"네 그렇습니다. 제 아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내가 애 아버지라고 확인한 노인은 상황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는데, 노인이 말하는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마트에서 볼일을 마친 할아버지, 주차장에서 승용차를 막 출발하려는 찰나, 아들 녀석이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하마터면 애를 칠 뻔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차에서 내리고는 아들 녀석을 불러 세우고 다음부터는 조심하라고 다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긴박했는지는 상황을 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지만, 내 아들이 남에게 꾸중을 듣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상당히 기분이 좋질 않았습니다. '남의 귀한아들에게 이러면 되냐.' 고 따지고 싶었으나 정황을 보니 딱히 내 아들이 조심스럽지 못한 측면이 있어 보여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영 개운치 않습니다.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아립니다. 노인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고개를 숙인 아들의 등을 떠밀며 차에 올라 집으로 향하는 길, 비록 잘못은 했다하나 어린애들에게 다반사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 기회를 봐서 위로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차량 뒤쪽에서 크락숀을 울리며 바짝 따라붙는 차량이 보입니다. 백미러로 가만히 보니 조금 전 그 노인이었습니다. 차량을 세우라는 시늉을 합니다. 조심스럽게 차를 세웠습니다.

'왜 불러 세웠을까?'
차에서 내린 노인은 아들에게 다가와 눈높이를 맞춰 허리를 구부리고는 화를 내서 미안하다며 아들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습니다. 노인네가 괜한 주책을 부려 어린애의 기를 죽인 것 같아 도저히 마음이 편치 않아 그냥갈수 없었다는 노인, 조금 전의 위압적인 눈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느새 포근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눈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할아버지, 제 자식이 잘못했는걸요. 개의치 마시고 편히 들어가십시오."
라고 인사를 드리고는 차에 올랐는데, 못내 미안해하시던 노인의 인자하신 눈매가 쉽게 사라지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몇 분전만 하더라도 밉도록 원망스러웠던 노인에 대한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일순간에 바뀔 수도 있는 것이더군요. 심지어는 '저런 노인이 있으니 아직까지 우리사회가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까지 해봅니다. 자칫 하루의 남은 시간을 저기압으로 보냈을지 모르는데, 노인의 조그마한 행동 하나로 오히려 값진 경험을 했다는 잔잔한 여운이 전해집니다. 표정이 한결 밝아진 아들 녀석, 일기장에는 과연 뭐라고 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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