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의 띠'인 임진년(壬辰年) 새해가 문을 열었습니다.
6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신정을 쇠는 집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집에서는 신정(양력1월1일)설을 쇠면서 최대의 명절을 보내고 있는데, 저희 집은 구정(음력1월1일)설을 쇠기 때문에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였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우리는 구정을 쇠지만 일가친척 중에는 신정을 쇠는 집안이 있어 신정 때면 세배를 하러 다녔던 기억도 있습니다. 당시는 신정이 3일을 쉬고, 구정이 하루를 쉬었으니 당연히 당시 어린마음에 구정은 별 볼일(?) 없는 명절인줄 알았지요.
설을 두 번 쇠는 것을 '이중과세(二重過歲)'라고 하는데요, 신정, 구정에 대해 알아보려면 100여 년 전인 18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공식적으로 양력설인 신정을 쇠기 시작한 것은 1896년부터입니다. 1894년 갑오경장이후 개혁의 하나로 신정을 쇠기 시작했지만, 민족고유의 명절은 음력설이고, 개화사상에 따른 양력설은 오랑캐의 명절이라는 시각은 어쩌질 못했나 봅니다.
이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신정을 쇠면 '친일매국', 구정을 쇠면 '반일애국'으로 변화했고, 일제의 강압에 의해 신정을 쇠는 가정과 일부는 전통을 중시하여 구정을 고집하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이중과세'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습니다.
듣기만 해도 정겨운 '정월초하루' 인 음력설, 이처럼 구정은 계속하여 수난을 면치 못했는데요, 달력에서 조차도 신정을 설날이라고 표기를 하고 음력설에는 구정이라고 표기를 하였습니다. 구정이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인데요, 당시 '민속의 날'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여 1989년부터는 드디어 설날이라는 명칭을 음력설에서 되찾아 왔습니다. 이때부터 쉬는 날도 음력설인 설날에 3일 공휴일이 정해졌습니다. 이처럼 '이중과세' 정책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민족 고유의 명절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모습입니다.
그러면 새해인사는 언제 하는 게 적당할까요?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새해첫날을 기념하기 위해 묵은해 12월31일 밤부터 자정인 새해 첫날 타종 행사를 고객들을 모셔놓고 성대하게 치릅니다. 축포를 터트리고 축하 인사말을 끝낸 후 서로에게 다가가 새해인사와 덕담을 나누는 게 행사의 주목적입니다. 새해인사는 하루 종일 만나는 고객들과 직원들 간에 이어지는데요, "우리 집은 구정을 쇠기 때문에 세배는 구정에만 한다." 라는 분들이 간혹 계시더군요. 새해 첫날부터 고리타분하게 이것저것 따지고 싶지 않아 "그럼 두 번 하세요." 하고는 넘어가곤 합니다.
새해인사를 신정에 하든, 설날에 하든 어떻습니까.
설날이면 색동저고리를 입은 어린애들의 손을 잡고 집집마다 인사를 다니는 모습의 세배풍습이 깊게 박혀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새해인사라는 것이 묵은해의 안 좋은 기억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하여 서로의 무사안녕을 빌어주고 복 된 한해가 되라는 덕담을 주고받는 '예'의 표시라고 봅니다.
서로가 기분 좋게 주고받을 수 있는 덕담을 굳이 절차에 따를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해 첫날인 신정에도 하고 명절날인 설날에도 하고, 많아 봐야 1년에 두 번인데 어떻습니까. 오늘도 하고 다가오는 설날에도 덕담을 나누는 건 어떨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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