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이 말하는, 주민번호를 외워야 하는 이유
초등생인 애들이 서둘러 등교를 마친 아침 시간, 동생네에서 걸려온 전화, 제수씨의 다급한 목소리로 봐서는 뭔가 큰일이 터진 모양입니다.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니 저에겐 조카인 동생네 자녀인 초등생 3학년 녀석이 등교를 하다가 그만 넘어지면서 콘크리트 모서리에 부딪혀 입술 안쪽이 크게 찢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입에서 피를 흘리는 녀석을 양호 선생님이 응급처치를 하고는 부모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네 부부는 맞벌이를 하는 상태라 아침 일찍 일을 나간 상태였기에 급한 나머지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가 봤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눈물조차 마르지 않은 얼굴에 간신히 지혈을 마친 상태처럼 보였고 입술안쪽으로 붕대를 살짝 끼워 넣은 상태였습니다. 양호선생님의 얘길 들어보니 5cm이상 길게 찢어졌다고 합니다.
꿰매야 될 것 같다는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외과로 가야 하는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입술이 찢어진 것은 치과로 가야 한다는군요. 그래서 잘한다고 소문난 치과를 찾아 차를 몰면서 생각해 보니 조카의 주민번호를 알아야 했습니다. 처음 가는 병원이기에 등록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하려는 찰나, 조카가 대뜸,
"큰아빠~! 저 주민번호 알아요.."
"엥? 주민번호도 알어? 외우고 있니?"
"네.."
"오! 기특하네.."
옆자리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아내는 뭐가 그리 신기하냐며 웃습니다. 요즘 애들 자기 주민번호 모르는 애들이 없다는 겁니다. 어떤 애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어린애들이 자기 주민번호를 왜 외워야 하는데?"
뒷자리에 있던 조카 녀석이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주민번호 모르면 컴퓨터 하나도 못해요..."
대답을 듣고 보니 아하~! 그럴싸하였습니다. 웬만한 사이트는 다 회원가입을 해야 이용이 가능하니 주민번호를 적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개인정보 보호에 바짝 신경을 써야하는 요즘, 애들 스스로가 개인정보에 대해 소홀히 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요즘의 이런 실상과는 달리 수십 년 전,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주민번호가 어떻게 다뤄졌는지 미처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18세가 되어 주민등록증을 받아들 때의 그 설레임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만, 초등학생 시절에 주민번호를 외우고 다녔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마도 지금처럼 활용할 일이 없던 때라 외울 필요성이 없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기회에 주민번호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면, 조선시대에는 '호패'라는 것이 있어 주민임을 증명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도민증'이라는 것이 그것을 대신하다가 1962년에야 주민등록법이 제정이 되었습니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여 전 국민을 조사하는 데만도 6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1968년에서야 완성, 그해 5월부터 국민들에게 주민등록 번호가 부여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도록 주민에게 부여하여 번호를 사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의 국가밖에 없다고 합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파르르의 세상과만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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