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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만사

유치원생에게 당한 인생 최고의 굴욕

by 광제 201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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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화가 되어있어 몸에 완전 익숙해진 행동이 있는가 하면, 정석은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귀찮아서 게을리 하게 되는 행동도 있고, 때로는 방법을 몰라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하는 경우의 행동들이 있습니다. 이중에선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두 번째의 경우가 가장 고쳐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살다보면 정석이라는 것은 성인보다는 어린아이에게서 잘 지켜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어 요령이 생긴 어른들에 비해 판단력은 떨어질지 모르나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꾸밈없이 행동하는 어린이들에게서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경들입니다. 당연히 어린 나이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앞서 말한 행동을 무심코 했다가 유치원생으로부터 최악의 곤욕을 치룬 황당한 사건(?)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저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어떠한 경우에 쥐구멍을 찾게 되는지를 새삼 느꼈던 일이었습니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시내의 모 패밀리레스토랑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가족들과는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에, 도착해 보니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아빠인 저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 직접 레스토랑으로 가는 바람에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손을 좀 씻어야 했습니다.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지요.


팔을 걷어 부치고는 수도를 틀고 비누칠을 하여 손을 씻고 있을 때입니다.

"아저씨~!"

하마터면 놀래 뒤로 자빠질 정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손을 씻다말고 뒤를 돌아보니 모르는 꼬마애가 눈을 빤히 치켜뜨고는 나를 부르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녀석이 손을 씻어야 하니 서둘러 비켜달라는 줄 알았습니다.

"손 씻을 거니? 그래 잠깐 기다려~ 아저씨 먼저 씻고..."

"그게 아니구요... 물을 아껴 써야지 그렇게 계속 틀어 놓으면 어떡해요.."

순간,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어안이 벙벙합니다. 눈을 돌려 내 손을 보니 거품이 잔뜩 묻어 있고, 수도에서는 물리 계속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평상시에 해 오던 그 방법 그대로 손을 씻었던 것이지요.

"어...어~~! 그래~"

잽싸게 수도를 잠그고는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너..몇살이니?"

"7살요.."

"물을 아껴 쓰는 방법은 누구에게 배웠니?"

"어른이 그것도 몰라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7살이면 유치원생이란 얘긴데, 명쾌하고 똑 부러지는 대답에 갑자기 얼굴까지 화끈거립니다. 손을 마저 씻고는 당찬 꼬마 녀석이 어디로 갔을까 두리번  거리면서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하필이면 바로 옆 테이블입니다. 더군다나 꼬마와 눈길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아주 예리한 눈매를 하고는 흘겨봅니다. 이것으로 끝났다면 다행이지요.

<아빠! 저 아저씨가 그랬어~!>

악~! 그새 다 일러바친 것이었습니다. 완전 죽을죄를 지은 죄인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요. 쥐구멍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정말 들어가는 시늉이라도 했을 겁니다.

우리 애들의 눈치를 보랴, 옆 테이블의 눈치를 보랴,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후유증은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됩니다.

손을 씻는 중에 물을 잠궈 본 적이 없고, 정말 수십 년간을 습관처럼 그렇게 씻어 왔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 꼬마 애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에 물을 받아놓고 씻어봤습니다. 비누를 헹굴 때만 수도를 틀면 됩니다. 단번에 절반이상의 물이 절약되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몸에 베인 습관, 정말 무섭네요. 무엇보다 이번에 유치원생 어린이에게 제대로 한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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