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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십년만에 잡아본 아내의 손, 반응은 썰렁

by 광제 2009.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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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만에 잡아본 아내의 손, 반응은 썰렁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아내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봤습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내의 반응은 의외로 썰렁했습니다. 왜 이렇게 냉담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결혼 전 한창 데이트를 하던 때의 아내는 내가 손을 잡아 주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아무 곳에서나 잡는 것은 아니었구요, 데이트를 하며 자동차 운전을 할 때면 습관처럼 손을 잡아주곤 하였습니다.

수동변속기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자들은 습관적으로 기어봉에 손을 얹어 놓고 운전을 하게 되는데 아내와 데이트를 즐기면서 기어봉을 잡고 있던 오른손은 늘 아내의 왼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물론 기어를 변속해야 할 때는 손을 놓아야만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습니다. 결혼전에는 이렇게 손을 꼭 잡고 운전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그리고 애를 낳아 기르면서 서서히 그때의 기억은 잊혀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도 전에 차량을 구입하여 얼마 전까지 15년을 타던 승용차가 잦은 고장을 일으켜 이번에 큰 맘 먹고 차량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수동변속기 차량에 길들여진 몸이라 수동으로 사려고 했는데, 사실 이제는 아내도 운전을 해야 하기에 하는 수 없이 자동변속기가 달린 차량으로 선택을 하였습니다.

자동변속기를 몰고 다닌 지 어느덧 보름이 넘어갑니다. 솔직히 편하긴 하더군요. 신체 중에서 가장 호강을 하는 녀석은 바로 왼쪽 발이었습니다. 15년을 넘게 클러치를 밟느라 엄청난 고생을 한 왼발, 하루아침에 하는 일 없는 녀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긴 그동안 고생 하였으니 이제 쉴 때도 되긴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녀석말고도 또 호강하는 녀석이 있었으니 바로 오른 손입니다. 기어를 변속하느라 무진 애를 썼는데, 이 녀석도 이제는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는 녀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15년간 지키고 있던 기어봉, 이제는 그 위에 올려놔도 하는 일이 없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아내에게 "이젠 왼발이 너무 편하네." 라고 하니 씨익~ 웃고 맙니다. 엊그제는 "오른손도 이제는 너무 편하네." 라는 말을 건네면서 갑자기 옛날 데이트 할 때 손을 잡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은근슬쩍 아내의 손을 잡아봤습니다. "아~ 좋다. 이젠 기어 변속도 할 필요 없으니 마냥 잡고 있어도 되겠네." 라면서 잡은 아내의 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혼하고는 단 한 번도 이렇게 아내의 손을 잡아준 적이 없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잡아야 할 때를 빼고는 잡아주고 싶어서 잡아 본 것은 정말 오래전일입니다.

순간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셀 수도 없이 옆자리에 태우고 다녔으면서도 10년 넘게 단 한 번도 손을 잡아준 적이 없으니 이렇게 무심한 놈이 다 있을까요. 못난 놈에게 시집와서 고생만 무지했는데, 손을 잡아보니 옛날 아가씨 때의 부드러운 감촉은 다 어디가고 이제 많이 거칠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흠칫 놀랬던 것은 거칠어진 손 만큼이나 변해있는 아내의 반응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달라고도 하더니, 오랜만에 내민 남편의 손길에 "왜이래~ 청승맞게..누가 보면 어쩌려고~" 라며 얼른 손을 빼버립니다. 남들이 보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데이트 하던 그때의 마음은 어딜 가고 이제 누가 볼 염려도 없는 차량 안에서 조차 남의 눈을 의식하다니요, 뭐 딱히 의식한다고 보는 것 보다는 손을 잡아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익숙하지 못했던 것이 정확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운전할 때만이라도 할 일이 없어진 오른손, 날이 갈수록 거칠어 가는 아내의 손을 이제부터라도 많이 잡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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