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기혼여성들이 참 많습니다. 직원명단을 펼쳐 놓고 보니 기혼여성의 비율이 전체직원 중 33%, 여성사원 중에는 61%가 기혼여성이더군요. 며칠 전 사원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맞은편에 두 분의 여직원이 앉아 있었는데 두 분 다 기혼 여성이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두 분이 서로 오가는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혼여성으로서 회사에서 겪는 고충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이 바로 제사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 회사와 상사에게 눈치 보이는 부분이 바로 제사 때만 되면 일일휴가를 받아야 하는데, 가장 눈치가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더군다나 회사가 일손이 달리거나 좀 바쁜 날에 허가를 득하려면 알게 모르게 상사로부터 느껴지는 압박은 직장생활 중 가장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중 하나라는 겁니다.
또한 그렇게 스트레스 받아 가며 휴가를 득하여도 하루 종일 시달리며 제사를 마무리 하고 뒷정리까지 끝내고 나면 다음날 출근까지도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피로의 여파가 며칠간 이어진다고 합니다.
남의 가정사에 간섭할부분도 아니겠지만, 뭐가 그리 힘들다고 하나... 남자인 제가 궁금하기도 하여 여쭤봤습니다. '대체 제사가 일 년에 몇 번이나 되냐구'요. 전에는 여섯 번이었는데 형제들 간에 나눠서 이제는 네 번이라는군요. 공교롭게도 저의 집하고 같은 네 번이더군요. 제가 그랬죠.
"일 년에 네 번이면 할 만하네요. 저희 집도 네 번인데 그리 힘들지 않은데."
"한 번하기도 힘든데, 네 번이 힘들지 않아요?"
"제사가 있는 날이면 형제들도 모일 수 있고 오랜만에 사람 사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난 좋던데요."
이 한마디가 두 분의 공격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남자들은 이게 문제입니다. 오로지 자기 생각뿐이죠. 제사 때만 되면 여자들은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지 아세요? 여자의 입장을 몰라서 그래요. 댁에 가서 여쭤보세요.' 로 시작된 성토는, 남자들이야 오랜만에 형제들 모여 술 한 잔할 수 있고 앉아서 마시고 즐거워하면 좋지만, 여자들이 치러야 하는 준비와 뒤처리의 고충은 남자들은 모른다는 얘깁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집에 제사가 네 번인데, 힘드냐.'구요. '그건 왜 묻냐'고 합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를 해줬더니....아내는...
"욕먹을 짓 했네, 남자들도 한번 직접 해봐야 해. 준비하고 음식 만들고 치우고 한번 하고 나면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걸."
이런..ㅜ.ㅜ 회사에서 당하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핀잔 듣고 오늘 일진이 말이 아닙니다. 아내도 이때다 싶었나 봅니다. 네 번의 제사에 설과 추석을 합하면 여섯 번인데, 요즘 세상에 이렇게 제사 많은 집 흔치 않다고..달력 넘기면서 제삿날 있으면 보는 순간부터 압박이라나...
언제부터 제사 풍습이 시작됐는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으나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 제사 풍습을 소중히 여기고 있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되어질 것이라 봅니다. 돌아가신 날에 정성을 다하여 넋을 기리고 예를 갖추는 것도 소중하고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정을 쌓는 것도 아름답지만 이를 준비하는 과정도 못지않게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제사 며칠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여야 하고 하루전날 시장도 보고, 당일에는 종일 음식 만들어야 하고, 제사지내는 동안 뒤처리에 마무리 설거지까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온몸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답니다. 그래도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리를 다 끝내고나서 수고했다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그나마 보람을 느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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